본문 바로가기
history

조선의 서민문화

by ㎣㎤㎥㎦ 2022. 10. 2.
반응형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력 증대와 상공업 발달로 서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고, 서당 교육의 확대와 한글의 보급으로 서민들의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문예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학과 예술은 주로 성리학적 윤리관을 강조하고 양반들의 교양이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조선 후기의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양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비판하거나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풍자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판소리와 탈놀이, 풍속화와 민화,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 등 서민들을 주체로 하고 서민들의 생활을 내용으로 하는 문화가 유행하였습니다.

서민 문화의 발달은 우리 문화의 전통과 가치가 재발견되고 그 관심의 대상이 서민 생활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문화의 확산은 서민들의 의식을 성장하게 했으며, 현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 의식이 고조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를 극복하고 평등 의식에 바탕을 둔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서민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한글 소설의 유행이었습니다. 한글의 확산과 문학의 저변이 서민층으로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또한, 주로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조직되었던 시사가 조선 후기에는 중인과 서민들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에 의해서도 조직되었습니다. 중인과 서민들의 시사는 비록 양반 사대부들을 모방한 것이기는 하지만, 문학의 향유 계층이 확산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한문학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등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한시를 남겼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판소리가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판소리는 광대가 북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창,아니리, 발림을 섞어 가면 한편의 이야기를 엮어 가는 공연입니다. 당시 광대는 천한 신분이었으나 관청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고, 고수 1명을 데리고 다니며 비교적 자유롭게 흥행을 벌이는 등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농촌을 기반으로 도시로 다니며 신흥 부농이나, 부상, 또는 관인들의 부름에도 즐겨 응하였으며, 안동 김씨나 대원군 등 양반 세도가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판소리는 광대가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빼거나 더할 수 있고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고 솔직하며, 관중들이 추임새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판소리는 일반 민중들에게는 물론 양반 사대부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으며, 조선 후기 사회의 대표적 문학 장르로 성장해 갔습니다.

각종 가면을 쓰고 노래와 춤으로 엮어 가는 탈놀이는 19세기에 이르러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탈놀이는 마을 굿의 일부로서 공연되어 인기를 얻었는데, 일부다처로 인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이나 파계승에 대한 풍자 등을 보여주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회화는 안견 등 도화서를 중심으로 한 화원들과 강희안 등 사대부 화가들이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들은 독자적인 한국 화풍의 전통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8세기 이후에는 진경산수화가 등장하였고, 풍속화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생동감 있게 풍속화에 담아냄으로써 회화의 폭을 넓혔습니다. 김홍도는 사대부들의 감상을 위한 그림과 함께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도 그렸습니다. 반면에, 신윤복은 양반과 부녀들의 풍류 생활과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서민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에 따라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려는 의지가 올라가면서 그들의 미적 감각을 잘 표현한 민화가 유행하였습니다. 민화는 소원을 빌고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주로 그려졌습니다. 소재는 해, 달, 꽃, 동물, 물고기 등으로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공예도 많이 발전하였습니다. 백자가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청화 백자가 유행하였으며, 안료 색에 따라 다채로웠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수입하던 유약을 자체 개발, 생산한 것이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목공예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장롱, 책상, 문갑, 소반, 의자 등이 있었습니다. 나무의 재질을 살려주면서 실생활에 활용도를 높여주어 서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여줬습니다.

다양한 음악 또한 향유층이 확대됨에 따라 발전하였습니다. 양반층은 가곡과 시조를 즐겨 불렀고, 서민들은 민요를 즐겨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과학 기술 또한 발달하였습니다. 조선 초기의 성과를 계승, 발전 시킨 것도 있지만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 과학 기술의 영향도 컸습니다.

 

반응형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과 일본의 문호 개방  (0) 2022.10.02
자본주의 발달과 제국주의 등장  (0) 2022.10.02
조선후기(2)  (0) 2022.08.04
조선후기(1)  (0) 2022.08.04
조선전기  (0) 2022.08.04

댓글